[아시아경제 조윤미 기자] 미국 애플의 전설이자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56) 최고경영자(CEO)가 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애플은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스티브 잡스가 이날 타계한 것을 전한다"면서 "스티브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끝없는 혁신의 근원이었다. 세계는 스티브의 덕분에 진보했다"고 애도를 표했다.
21살에 애플을 창업한 잡스는 1985년 쫓겨났다가 12년 뒤 복귀한 이후 혁신적인 컴퓨터와 휴대폰, 모바일기기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시가총액이 엑손 다음가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잡스가 애플에 끼친 영향이 막대했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후 잡스는 그야말로 신화를 써내려 갔다. 맥북,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통해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던 중 잡스는 지난 2003년 췌장암 수술과 2009년 간 이식 치료를 받았으며 올 1월에는 3번째 병가를 냈다.
잡스는 지난8월25일 건강상 이유로 애플의 CEO직을 사임했다. 그의 사임 당시 애플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가치있는 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성명을 냈다.
잡스가 이사회 멤버로 소속돼 있는
월트디즈니에서는 가장 먼저 잡스 사망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잡스는 디즈니의 주식 7.4% 를 보유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의 로버트 이거 CEO는 이날 "잡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창조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면서 "세계는 가장 큰 유산을 잃었고 디즈니는 우리의 가족이자 이사회 멤버를 잃었으며 나는 가장 위대한 친구를 잃었다"고 말했다.
< 다음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한 애플의 역사 >
1976년:
고등학교 친구인 스티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 설립. 첫 번째 제품인 '애플 I'은 캘리포니아주 파올로알토의 '집에서 만든 컴퓨터 클럽'에서 선보임.
1977년 :'애플 II' 출시. 칼라 그래픽에 플라스틱 케이스에 든 첫 번째 개인 컴퓨터.
1983년 :'Lisa' 출시. 오늘날 가장 익숙하게 쓰이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가진 기업용 데스크탑 컴퓨터.
1984년 :맥킨토시 개인용 컴퓨터 첫 출시
1985년 :경영권 다툼으로 스티브 잡스 회사를 떠남.
1997년 9월 :회사가 18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잡스 복귀. 임시 CEO로 임명됨.
1997년 11월 :새로운 맥킨토시 컴퓨터인 'G3' 출시하고 대중들이 직접 애플사로부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웹사이트 공개
1998년 :iMac 데스크탑 컴퓨터 출시
2001년 :iPod 출시
2003년 :온라인으로 영화, 음악 등의 다운로드를 받거나 구매할 수 있는 iTunes Store 개설
2004년 8월: 스티브 잡스, 췌장에서 종양 제거 수술 성공적이라고 발표
2005년 :팀 쿡이 2002년 영업 및 운영 담당 부사장에서 COO로 승진
2007년 :iPhone. 출시
2008년 :iTunes의 업그레이드판으로서 App Store 개설
2009년 1월 :건강상의 이유로 잡스 휴가. 짐 쿡이 임시 대행
2009년 6월 :간 이식 수술 뒤 잡스 복귀
2010년 4월 :iPad 판매, 그 해 말에 타블릿 피씨 시장의 84% 점유
2011년 1월 :잡스, 또다른 병가 발표
2011년 3월 :iPad 2 출시
2011년 9월 :일시적으로 애플의 시가총액이 엑슨모빌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로 기록됨
스티븐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
미국 애플(Apple) 사의 창업자이자 전 CEO. 불우한 가정 환경과 대학 중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워즈니악과 로날드 웨인 등과 함께 1977년 애플을 창립하여 성공신화를 썼다. 기존 PC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IBM을 압박하지만, "리사 프로젝트"의 대실패 등으로 인하여 1985년 애플을 떠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이후 픽사의 CEO로 재직하며 성공을 거둔 뒤, 1996년 위기에 빠진 애플의 임시 CEO로 복귀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차세대 IT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2003년 췌장암 판정 후, 투병 생활에 들어가 2011년 CEO 자리를 후임자인 팀 쿡에게 넘겼다. 2011년 10월 7일 지병으로 인해 영면했다.
[브로그에 실린 글을 옮깁니다]
안녕하세요.
산입니다.
갑작스러운 스티븐 잡스의 영면
아침에 일어나고 학교에 있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으로 속보 하나가 떴습니다.
바로 애플의 창업자이자 전 CEO였던 스티븐 잡스가 영면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집에서 전하기로, 국내 MBC 등에서도 속보로 스티븐 잡스의 영면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다고 하더군요.

어제 포스팅을 한 대로 애플의 아이폰4S 론칭 소식을 전했던 지라, 저 역시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티븐 잡스는 단순히 "애플의 창업자이자 전 CEO", 혹은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의 개발 기획자이자 마케터"라는 의미를 넘어서, 21세기 초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었으니까요.
제 나이 또래 중 한 번이라도 아이폰이나 아이맥, 아이팟 등을 조작해 보지 않은 사람도 없고
뿐만 아니라 그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이나 애플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까요.
실제 그가 입은 허름한 청바지와 까만 티셔츠는 한 시대를 풍미한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적이 많았던 애플의 CEO, 스티븐 잡스

스티븐 잡스의 영면에 많은 인사들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특히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PC "애플"시리즈의 개발자였던 스티븐 워즈니악 역시 "케네디 대통령의 총격 만큼이나 충격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워즈니악과 잡스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친구이기도 했지만 관계가 썩 좋지는 못했습니다.
이전 스티븐 잡스는 아타리에서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게임을 개발할 당시 워즈니악의 도움을 빌렸는데, 실제 50:50으로 수익을 놔누기로 약속한 뒤, 연구 대가로 아타리에서 1000달러를 받은 후 "600달러만 받았다."며 300 달러만 워즈니악에게 주기도 했지요.

이후 "애플Ⅲ"의 실패로 워즈니악이 책임을 지고(사실 워즈니악의 책임은 아니었습니다. 개발은 잡스가 주도했고, 워즈니악의 회고대로 "애플Ⅲ"는 개발 부서의 생각보다 마케팅 부서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CEO 자리에서 사퇴할 때 잡스는 "워즈니악은 한 일이 없었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후에 둘은 화해했지만, 최근 스티브 워즈니악이 스티븐 잡스의 책 축사를 거절하기도 했고 워즈니악에게 신제품을 보여준 애플의 엔지니어가 해고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MS)의 창업자이자 역시 성공적인 IT 천재 빌 게이츠 역시 스티븐 잡스이 영면에 "모두가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그와 잡스의 악연도 상당했지요. 워즈니악 정도는 아니지만, 1986년 스티븐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출시한 윈도우 2.0을 "매킨토시의 짝퉁"이라고 비난합니다.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츠도 "스티븐 잡스는 이 시대 최고의 CEO"였다고 했습니다만, 구글과 애플, 에릭 슈미츠와 스티븐 잡스의 악연 역시 셀 수 없지요.
실제로 잡스는 CEO로 재직하던 시절 애플의 사내 미팅에서 "구글이 애플을 죽이려 한다."고 말한 바 있었고,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는 모토는 정말 엿같은 소리"라며 에릭 슈미츠와 구글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발언이 나올 때도 에릭 슈미츠는 애플의 이사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에릭 슈미츠는 2009년까지 애플의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애플이나 구글 모두 세콰이어 캐피탈이 대주주로 있는 형제나 마찬가지인 회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에릭 슈미츠는 애플의 이사진에서 고립되고, 결국 잡스와 등을 지게 됩니다.

스티븐 잡스가 적으로 둔 사람들은 비단 "유명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잡스가 1982년 타임 지의 표지모델로 선정되었을 때도, 익명의 기술자들이 스티븐 잡스에 대한 악평을 달 정도였으니까요.
실제로 잡스는 적이 많았던 사람이었고, 또 그것이 그와 애플의 성공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마케터
성공한 사람들은 적이 없거나, 혹은 적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자가 빌 게이츠였다면 후자는 바로 스티븐 잡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스티븐 잡스는 기술자라기보다는 마케터, 훌륭한 사업 기획자에 가까웠습니다.
늘 새로운 시각에서 남들이 하지 못했던 아이템들을 창조했고, 이를 성공시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물론 그가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리사 프로젝트(스티븐 잡스의 딸 이름을 땄습니다.)" 나 "NEXT 컴퓨터(애플 퇴사 후 만든 컴퓨터입니다.)" 등의 실패가 알려주듯이, 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패 뒤에는 이를 뛰어넘는 성공으로 시장을 주도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과 체계를 완성시켰고, 이를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그가 퇴사하기 전까지 애플이 "스티븐 잡스의 회사"로 기억되는 것도 그 이유겠지요.

자신의 화이트보드에 필기한 임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회로기판도 보기 좋게 만들라 지시할 정도로 디자인을 중시했으며,
앱스토어 등의 새로운 체계를 제기할 정도로 시장을 따라가기보다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에 가까웠습니다.
스티븐 잡스가 없는 애플의 미래...그 후는?
스티븐 잡스가 영면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지만, 이것이 나름 호재(?)로 작용한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애플의 협력업체나 경쟁사들이 그랬는데요. 특히 애플과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던 삼성전자나 애플에 LCD를 공급하는 LG디스플레이 등의 주가가 강세를 띠기도 했습니다.

현재 애플의 CEO는 팀 쿡입니다. 일찍이 스티븐 잡스가 병가를 냈을 때 그의 공석을 대신하기도 했고, 그의 실력은 애플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문제는 팀 쿡의 리더쉽은 스티븐 잡스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팀 쿡은 잡스와 달리 "협력"과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즉, 잡스와 같은 "천재형"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실제 전날 아이폰4S가 발표되었을 때, 관객석에서는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했을 때만큼의 "환호"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애플의 밑천이 다했다."는 악평을 내놓기도 했지요.
스티븐 잡스 그 이후. 적이 많은 애플의 미래는?

영원한 1등 기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떄 시장을 풍미했던 IBM도, MS가 그랬던 것처럼 애플도 지금 새로운 위기에 처해있는지도 모릅니다.
과연 스티븐 잡스가 없는 지금, 애플이 지금처럼 시장 선도자의 위치를 유지할 지 혹은 그러지 못할 지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